2016 07.20

화면해설, 자막으로 장벽 허물기 – 사회적기업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화면해설, 자막으로 장벽 허물기

사회취약계층 문화향유권을 위해…‘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오늘 특별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러닝타임 15분의 짧은 단편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이다.

배우 이청아, 한상진, 그리고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박보검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시각장애를 가진 온유와 청각장애를 가진 은수가 배리어프리(Barrier Free)영화를 통해 장애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고 소통의 즐거움을 느낀다는 줄거리로 구성돼 있다.

이 영화의 특별함은 영화 시작과 함께 알 수 있다. 영화가 시작돼 배우가 등장하면 이내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차 룸미러에 가족사진이 매달려 흔들거린다. 삼십 대의 아빠 윤이 딸아이 온유와 함께 밤길 드라이브 중이다. 온유는 조수석에 앉아 흥얼거리면서 곰 인형을 매만지고 있다.”

이 목소리는 바로 영화의 장면을 해설해주는 화면해설이다. 스크린 밑으로는 한국영화임에도 ‘[♪경쾌하고 흥겨운 분위기 음악 시작]’이라는 자막이 뜬다.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배리어프리영화 버전은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해설이 나오고 한국어 자막이 뜬다.
(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렇게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에 화면해설과 대사를 포함한 모든 소리 정보를 표현한 한글자막이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배리어프리영화’이기 때문이다.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노인들이 편하게 건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지을 때 물리적 장벽을 없앤다는 뜻의 건축용어다. 여기에는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   

그럼 배리어프리영화는 무엇일까? 바로 영화의 장벽을 없앤 영화다.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영화의 장벽은 영상과 소리다. 그래서 영상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을 하고, 소리를 듣지 못해도 영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소리와 대사를 표현한 한글자막을 넣었다.

 

배리어프리영화와 일반 영화의 차이점은 화면해설과 한국어 자막이다.(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렇게 만들어진 배리어프리영화는 일반인뿐 아니라 시각·청각 등의 장애가 있는 사람, 나이가 들어 시각·청각 기능이 떨어진 어르신 등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영화를 선택하고 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누군가 해야만 한다면, 그 누군가가 ‘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처음 ‘배리어프리’라는 개념을 도입해 영화를 만든 김수정 배리어프리위원회 대표의 말이다. 

장애의 장벽을 없앤 영화를 만나다

김 대표가 배리어프리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0년 일본 사가현에서 열린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에서다. 

“당시 저는 이은경 전 배리어프리위원회 대표와 함께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영화와 관련된 일이 뭐가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안 지인이 이 영화제를 소개해 처음으로 배리어프리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는 결코 장애인만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영화인들,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모두가 참여해 영화제를 즐기고 있었다. 김 대표는 그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데 보람을 느낀다는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

“그때 국내에서도 한국농아인협회와 시각장애인협회에서 화면해설이나 한글 자막을 넣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 해설과 자막으로는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감정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죠. 저도 항상 그게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영화인이 참여한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하게 됐죠.”

 

결심은 곧 실행에 옮겨져 2011년 설립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이듬해인 2012년 1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9일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지난해 9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4년간 배리어프리영화 36편 제작…재정적 어려움 겪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처음 만든 배리어프리영화는 일본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히가시 요이치는 배리어프리영화버전 제작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고 한다.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들기 위한 각본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 마침 배리어프리영화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한 완벽한 샘플이 필요했던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게 딱 맞는 영화였다. 양익준 감독의 지휘 아래 탄생한 한국판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2012년 7월 일본에서 원작과 함께 동시 상영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처음 만든 영화 <술이 깨면 집에 가자>는 일본에서 일반 영화와 동시 상영했다.
(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 영화를 시작으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만든 배리어프리영화는 <도가니>,<마당을 나온 암탉>,<도둑들>,<완득이> 등 36편이다. 1년에 평균 9편 정도 제작된 셈이다. 1년에 100편에 가까운 영화들이 개봉하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 적은 수이다.

 

“매해 재정 상황에 따라 영화 제작 수가 달라집니다. 투자가 많이 이뤄질 때는 10편도 제작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3편 만드는 데 그치기도 합니다.”

 

김 대표는 더 많은 영화를 만들어 사회 취약계층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한편의 영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이 경험이 특별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배리어프리영화 야외 상영 모습.(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문제는 제작비용이다. 그래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뜻을 함께할 정기기부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저희 신조가 ‘1000명이 매달 만 원씩만 기부해주면 한 달에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입니다. 물론 1000만원으로 배리어프리영화 한 편 제작하기 쉽지 않지만, 노력하면 한국영화는 만들 수 있거든요.”  

 

일단 정기기부자 1000명을 모으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아직 100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배리어프리영화 ‘우리마을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어

 

한 편의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드는 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여의 시간이 걸린다.

 

외국영화의 경우 제작할 영화를 선정하면 라이센스 협의를 거친 후 원소스를 받아 더빙 번역에 들어간다. 번역 작업이 끝나면 캐스팅을 거쳐 더빙 작업을 한다. 여기에 화면해설을 더해 영화 믹싱 작업을 한 후 마지막으로 한국어 자막을 넣으면 영화가 완성된다.   

 

한국영화 제작은 더빙작업을 제외한 모든 과정이 외국영화와 동일하다.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영화에 따라 화면해설의 톤이나 한글자막의 어투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과 상의하죠.”

 

배우 한지민은 영화 <늑대아이>의 배리어프리영화버전에 화면해설로 참여했다.(사진 제공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영화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야 하는 자막이다. 청각장애인들이 자막을 읽는 것만으로 영화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끊임없이 수정작업을 거친다.

“관객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때로는 이모티콘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할 때 앞에 음표를 넣거나 피아노를 말할 때 피아노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식이죠.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영화, 어린이영화 등에 주로 사용합니다.”

  
간혹 더빙에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주로 기업의 후원 등으로 영화를 제작할 때 이벤트로 진행되며, 배역은 오디션을 통해 정해진다. 일반인이 참여한 대표적인 영화로는 협동조합을 주제로 한 영화 <위 캔 두 댓!>이 있다. 영화제작 대부분이 재능기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인의 참여를 늘리고 싶지만, 비전문가다 보니 제작 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배리어프리버전 상영회 모습.(사진 제공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공동체상영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우리마을 소극장’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우리마을 소극장은 각 동네 도서관과 문화회관을 영화관으로 활용해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성동구립도서관, 동대문 답십리촬영소, 은평 증산정보도서관, 서대문 문화회관, 관악 청소년회관, 도봉구민회관 등 6곳이다.

매년 11월에는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는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진행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설립추진위원회 시절 배리어프리영화를 좀 더 빨리 알리고자 영화제를 열게 됐다고 했다. 6회째인 올해를 전환점으로 삼아 더 풍성한 볼거리와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2015년 11월에 열린 제5회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의 홍보대사.(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울 혁신형 기업에 선정…클로즈 시스템 개발 진행

지난 6월 배이러프리영화위원회는 ‘배리어프리 클로즈 시스템 개발 사업’으로 서울 혁신형 기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화면해설과 자막이 모든 관객에게 노출되는 기존 오픈시스템 방식에서 한 단계 발전해 시각·청각장애인들이 별도의 기기를 착용해 각각 화면해설을 듣거나 한국어 자막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 사업이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까지 기본을 했다면 앞으로는 나아가야 할 시점입니다. 사회적기업으로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기간도 2년 정도 남았기 때문에 더욱더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질 높은 배리어프리영화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자생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클로즈 시스템 사업이 그 발판이 될 수 있기를 김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드는 일은 제가 잘하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좋은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기쁜 것은 없습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앞으로 더 많은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들어 사회취약계층이 더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홈페이지 :www.barrierfreefilms.or.kr 

글. 정혜선(이로운넷 에디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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