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8.07

웅크린 순수 미술의 꿈, 미나리하우스에서 꽃필까

웅크린 순수 미술의 꿈, 미나리하우스에서 꽃필까 
'공정 미술'을 위한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의 미술관 겸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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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미닫이 사이로 비쳐든 햇빛이 방바닥 위에서 네모지게 빛난다. 이불을 휘감고 있기에는 해가 너무 높아졌다. 그럼에도 이불을 밀치고 일어날 수 없는 건, 현실보다 꿈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저기 붉고 탐스러운 꽃들을 꿈속에서라면 더 크게, 더 붉게, 더 향기롭게 피워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꿈을 깨면 꽃은 없다. 아무데도 꽃이 없는 저 현실을 견딜 자신이 아직은 없다.
 미술관이자 게스트하우스인 서울 동숭동 ‘미나리하우스’에서 진행 중인 유미연 개인전 ‘피고 지고, 잠들고’(2.28~4.27)는 이불을 둘러쓰고 웅크린 사람과 커다란 꽃들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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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 앞에 선 ​순수 미술 작가들
 이 전시에는 조형물이 놓인 장소, 즉 ‘미나리하우스’가 큰 의미를 가진다. 작품의 일부라 할 수 있을 정도다. 
 고즈넉한 주택가, 마당으로 문을 낸 방, 흙으로 다져진 마당, 넓지만 휑한 옥상, 방치된 창고…. 어디에나 있을 것 같고, 동시에 이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듯 한 이런 주택 안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 이불을 뒤집어 쓴 형체들이 가진 불안과 두려움, 계속 도피해 있고 싶은 마음이 실제처럼 전해진다. 
 만일 화려한 갤러리 조명 아래였다면 이 작품들은 그저 어떤 종류의 농담인 것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유미연 작가는 미나리하우스와 같은 전시 공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와 구석구석을 둘러본 뒤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고 본래 활동지인 부산에서 서울까지 작품을 옮겨와서 이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이 전시가 특별한 것은 미나리하우스의 존재 이유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웅크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순수 미술 작가들의 꿈을 붉고 커다랗게 피워주고자 하는 것이 미나리하우스의 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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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가들이 지원할 대상인가?"
 미나리하우스는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A Company)가 운영하는 곳으로 2013년 초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사업비 지원도 받았다. 이 곳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란, 순수 미술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취약계층을 고용해서 제품을 만드는 곳을 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순수 미술 작가들을 지원한다’는 사회적 가치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에이컴퍼니 정지연(36) 대표는 “그 때문인지 사회적기업 인증 심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면서 “미술 분야는 지원 대상이 아니고,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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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미술 작가들 중 절대 다수가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4대 보험 중 아무 혜택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며, 창작을 위한 장소도 구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작품을 겨우 완성해 판매하고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정 대표는 단언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술 작품을 사는 사람들은 딱 한 부류예요. 투자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작품 살 때 꼭 이렇게 물어요. ‘이 작가 어느 대학 나왔어요?’, ‘무슨 상 탔어요?’, ‘어느 갤러리에 걸려 있던 거예요?’ 앞으로 값이 더 오를 지만 보니까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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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팔아 본 적 없는 작가, 사본 적 없는 우리
 그런 반면, 보통의 사람들은 미술 작품을 사 본 경험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명품 패션에는 수백, 수천 만 원도 쓸 수 있는 고소득층이라고 해도 미술을 즐기는 방법은 세계 유명 작가의 특별전에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것밖에 없는 줄로 안다.
 “한 때 포인트 벽지가 유행했잖아요? 요즘은 서양처럼 보드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게 유행이래요. 그러면 결혼사진, 돌사진 걸기가 좀 어색한데, 그래서 유명 작품을 프린트해서 걸곤 해요. 그런 것도 고급 액자를 쓰면 몇 십만 원 하는데, 적게는 30만~40만원이면 국내 작가의 단 하나뿐인 진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죠.”
 이런 상황이라 단 한 번도 자기 작품을 팔아본 적 없는 작가들이 즐비한 게 국내 현실이다. 작품이 팔려도 얼마에 팔렸는지, 누가 사갔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직거래를 할까봐 갤러리에서 잘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쓰거나 보증서를 발급하는 갤러리도 드물다. 미술 작품이 ‘비자금’ 기사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이런 불투명한 거래 관습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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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하자마자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작가들 중 대다수는 이런 미술계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방법도 찾지 못 하고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작품 활동을 포기하고 있다고.
​작가와 사람들 사이에 '공정 미술'의 다리를!
 이런 난맥상을 과연 에이컴퍼니는 어떻게 풀겠다는 것일까? “한 번도 그림을 사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그림을 파는 회사가 될 거예요. 한 번도 그림을 팔아본 적 없는 작가의 그림을 가장 많이 팔아준 회사가 될 거고요. ‘공정 미술’을 위한 풍토를 작게라도 만들어 갈 겁니다.”
 2012년 6월, 에이컴퍼니는 서울 합정동의 한 2층 카페를 빌려서 ‘브리즈 아트 페어’를 열었다.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가볍게 만들기 위한 전시로, 작가와 구매자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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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점을 전시했는데 15점을 판매했다. 그 중 12점이 처음 그림을 사 본다는 사람들에게 팔렸다.  그 비결은 ‘모든 작품 200만 원 이하, 10개월 무이자’라는 조건을 크게 내건 것이었다.
 “가격에 큰 부담이 없으니, 관람객들이 ‘마음에 들면 하나 살까?’하는 마음으로 둘러보시게 된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이 때의 구매자들은 아무도 “이 작가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고양이 그림을 골랐다”, “아이가 좋다고 해서 골랐다”는 등 이유가 주를 이뤘다.
 작가들은 이런 구매 이유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까? 정 대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더 좋아했어요. 저희는 일부러 구매자와 작가들을 직접 만나게 해 드리는데, 아무 정보 없이 순수하게 ‘눈에 들어와서’ 작품을 골랐다는 구매자의 반응에 작가들이 무척 기뻐하더라고요.”
 에이컴퍼니는 구매자들에게 해당 작가의 이후 전시 및 작품 활동 정보를 일일이 보내준다. 그림을 산 것이 그저 스쳐간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작가와 미술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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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불투명성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기존의 미술계에도 에이컴퍼니는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 30만 원짜리 작품을 판매해도 계약서와 보증서를 철저하게 쓰며, 누구에게건 공개된 가격대로 정가 판매만 한다는 점이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 깎아준다고 기분 나빠하며 돌아가셨던 분이 다시 와서 ‘여긴 아무한테도 안 깎아준다면서요?’ 하고 사 가신 일도 있어요. 나만 손해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불신과 불투명성이 악순환 되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 고리를 우리가 끊어보고 싶어요.”
 미나리하우스를 연 것도 ‘다리 놓기’의 일환이다. 처음 취지는 낙후지역에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주변을 정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정화 작용이 있다는 채소 ‘미나리’에서 땄다. 그런데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과, 전시 공간, 게스트하우스용 공간을 위해서는 최소 방 3칸짜리 집이 필요했는데, 슬럼화가 심한 곳에서는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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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으로 찾은 곳이 동숭동에 위치한 지금의 집인데 1960년대 지어졌을 당시에는 꽤 호화로웠을, 서양식과 한옥 양식이 절충된 단독 주택이다. 초대 정부 장관 출신이 살았다는 내력도 있다고 했다.
 
“들어와서 보니, 서울 어디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을까 싶어요. 마당에서 작가들이 새벽까지 용접 작업을 해도, 주말마다 바비큐 파티를 열어도 뭐라 하시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아뜰리에, 전시장, 게스트하우스, 워크숍 공간까지
 방 한 칸은 작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 즉 아뜰리에다. 지난 1년간 2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썼고, 최근 심사를 통해 앞으로 6개월간 사용할 작가 1명을 선정했다. 사용료는 전혀 없고, 대신 이 곳에서 진행되는 전시와 워크숍, 게스트와의 교류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예술인의 사회 참여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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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방 두 칸은 게스트룸이다. 주로 일주일에서 한 달 가량 장기투숙하는 외국인들에게 내주는데, ‘에어비앤비’(www.airbnb.co.kr) 등 사이트를 통해 현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개성 있는 숙소를 찾는 여행객들과 연결되고 있다.
 “미술가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예술가나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로 찾아오는데, 여기서 일하거나 전시를 하는 작가들하고도 네트워크가 형성돼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죠.”
 게스트룸을 포함해 거실, 마당, 옥상, 옥상 옆 산비탈과 연결된 텃밭과 창고까지도 이 집의 거의 모든 공간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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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에 전시된 작품은 낙산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홍보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렇게 저렇게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 주말에는 꽤 되는데, 관람뿐 아니라 전시 작가, 에이컴퍼니 직원들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앉아서 쉬다 갈 수도 있다. 관람료는 없다. 구경하다가 작품을 사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다. 
  
​작가들을 위한 법률·세무 강좌도

 이밖에도 미나리하우스는 워크숍과 회의 등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에이컴퍼니는 올해 ‘브리즈 아트 페어’를 다시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작품을 '첫 구매자'들에게 팔 수 있을지 구상이 한창이다. 또, ‘작가들을 위한 법률·세무 강좌’도 시작할 계획이다.
 정 대표까지 모두 5명에 불과한 적은 인원에, 수익도 많이 내기 어려운 구조지만 이처럼 할 일이 많고 꿈도 많아서 에이컴퍼니는 행복한 회사다.
 이 곳을 통해서라면, 이불을 걷어내고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작가들이 많아지리라고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더 붉고 더 크게 꿈을 피워낼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더 아름다워질 것이고, 우리 각자의 꿈도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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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하우스 운영자인 에이컴퍼니 정지연 대표(왼쪽)와 김한별 디렉터.
글 황세원(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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