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8.21

캐나다 퀘벡과 샹티에-‘빵과 장미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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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과 장미의 행진'으로 시작된 퀘백주의 조용한 혁명 '쌍티에'

   

 

 세계 최대의 도시 미국 뉴욕, 1908년 3월 8일 대규모 시위대가 뉴욕을 가로지른다그 도시 한복판에 서서 외치기 시작한 건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빵그리고 권리를 상징하는 장미그들은 150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100년후인 1995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경제위기에 봉착한 여성노동자들이 빵과 장미의 행진을 다시 시작한다.

 

 이 행진은 퀘벡 주정부를 중심으로 기초단체경영자협회노동자연맹사회단체 대표가 모여 퀘벡의 경제·사회 미래에 관한 연석회의를 이끌어내었고연석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낸시 닌탐은 그해 10월 '연대로 나아가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주 정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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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님탄 현 상티에 대표 

 

 

 이 보고서에는 공공부문과 시민사회의 상호 합의하에 만들어진 퀘벡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와 각종 사업 프로젝트 등 구체적인 경제 위기 해결 방안이 담겼다.

 

 

 여기에는 '사회적 경제'란 생산활동과 사회적책임이 결합된 경제이며사회적책임이라는 것은 민주적인 운영구조와 수익의 사회적 환원시스템 그리고 정부와는 독립된 자율적 경영체라는 원칙이 포함되어있다.

 

 

 이에 퀘벡주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 연대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그리고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보육과 주거환경문화 분야에서 각종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설립 등을 적극 지원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어로 작업장이란 의미를 가진 사회적경제 협의체인 샹티에(Chantier)”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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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티에 로고와 공식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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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티에 홈페이지 첫 화면   www.chantier.qc.ca

 

 

 당시 주정부는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민영화로 가느냐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경제를 활용하느냐두 개의 갈림길 위에 서서 선택해야 할 순간에 놓여 있었다.

퀘벡은 결국 국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경제모델을 선택했고그 결단은 사회적경제의 혁명으로 이어졌다.

 

 샹티에의 실험을 통해 이후 10여 년 동안 탁아 서비스 부문에서 25000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1만 호가 새롭게 지어졌다.

 

 쓰레기 재활용 등을 위한 사회적 기업 수십여 개가 만들어졌고이 과정에서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의 취업과 각종 문화 사업을 위한 협동조합 등도 생겨난다.

 

 샹티에는 정부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경제의 핵심인 연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설립과 정착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담당한다.

조직의 경영 시스템 안정화를 지원하기도 하고업무상 필요한 교육훈련과 설비투자기금을 지원하며 자립을 돕기 위하여 기관의 홍보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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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브라질 리오데자이네루에서 열린 '리오+20'에 참석한 상티에

 

 그 결과 현재 퀘벡주의 사회적 경제 기관은 7,000여개에 달하며, 3,000여개의 협동조합에 88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존재한다퀘벡 전체 인구가 800만 명인데협동조합 조합원 수가 더 많은 것이다이는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를 통해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7만 8000여 개에 이른다협동조합 전체의 연간 매출은 180억 달러자산은 1000억 달러다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는 퀘벡 주 전체 경제의 8~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퀘벡의 선택과 집중그리고 샹티에의 실험 결과로 2004년 폴 마틴 당시 캐나다 총리는 사업과 자본이 아니라사람’ 중심의 사회적 경제를 핵심 사회정책으로 선언했고 이는 국가의 사회 정책이 됐다.

 

 

 

 

– 김미현(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기획연구팀장)

 

 

참고자료

정태인 이수연, <협동의 경제학>, 2013,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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